제품··5분 읽기

고정된 시각 하나가 제품 전체를 동기로 만든다

아무 때나 오라고 만든 하루짜리 파티에 밤 10시 단체 사진을 하나 두었습니다. 알림과 예고가 전부 그 시각을 중심으로 섰고, 제품은 두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동기 설계#제품 원칙#HappyBirthTown

해피버스타운의 첫 모습은 온라인 생일파티였습니다. 출발점은 한 문장이었습니다 — 온라인 파티는 콘텐츠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모두가 같은 두 시간에 접속해야 한다는 전제 때문에 실패한다. 그래서 파티를 두 시간이 아니라 하루로 만들었습니다. 생일을 둘러싼 스물다섯 시간이고, 그 안에서는 누구든 자기 시간에 들어와 편지를 넣고 장식을 놓고 나가면 됐습니다.

그 하루 한가운데에 밤 10시 대표 사진을 두었습니다. 이 글은 그 사진 하나가 제품 전체에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시각을 옮기는 대신 무엇을 바꿨는지에 관한 기록입니다.

콘텐츠는 비동기였고, 셔터는 아니었다

단체 사진은 처음부터 조심해서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동시에 있는 순간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시각과 사진에 담기는 순간을 떼어 놓았습니다. 광장 한가운데의 빈 칸을 아무 때나 하나 잡아 두면, 밤 10시에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섭니다. 자리를 잡고 나가도 남습니다. 주최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셔터는 저절로 내려갑니다. 그 시각에 없던 사람도 사진에 있습니다.

설계만 보면 비동기였습니다. 그런데 셔터는 여전히 한 순간에 내려갔고, 그 순간 둘레에 다른 것들이 모였습니다. 알림은 «밤 10시, 다 같이 초를 불어요»라고 보냈습니다. 화면은 10시를 예고했습니다. 하루의 각본은 그 시각에 맞춰 자동으로 예약됐습니다. 하나하나는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사진이 10시에 찍히니 10시를 알려야 하고, 알리려면 예고해야 하고, 예고한 시각에는 무언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제품은 두 말을 하게 됐습니다. «아무 때나 오세요»와 «10시에 오세요». 둘 다 같은 화면에 있었습니다.

하나쯤은 괜찮지 않다

동기 앵커가 하나뿐이라는 것은 변명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만 있어도 알림과 예고와 카운트다운이 그 하나를 중심으로 다시 서기 때문입니다. 제품이 하루에 단 한 번 시각을 말하면, 사용자는 그 시각을 본편으로 읽습니다. 나머지 스물네 시간은 본편 앞뒤의 대기 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각을 못 맞춘 사람은 «본편을 놓쳤다»를 그대로 느낍니다. 사진 속에 자기 모습이 서 있어도 그렇습니다. 콘텐츠가 비동기로 설계돼 있다는 사실은 그 감정을 막아 주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구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강조하는 것을 읽습니다.

이것이 가장 불편한 대목이었습니다. 출발점이었던 실패 — 같은 시간에 접속하라는 전제 — 를 제품 스스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다시 세워 놓고 있었습니다. 두 시간을 하루로 늘려 놓고, 그 하루 안에 다시 한 시각을 만든 셈이었습니다.

시각을 옮기지 않고 사진의 종류를 바꿨다

먼저 떠오른 수정은 시각을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10시가 이르다면 11시로, 혹은 주최자가 고르게. 하지만 어느 시각으로 옮겨도 그것은 여전히 제품이 고른 시각이고, 누군가는 못 맞춥니다.

그래서 사진의 종류를 바꿨습니다. 사진은 하루 중의 사건이 아니라 하루가 채우는 그릇이 됐습니다. 아무 때나 와서 빈 칸을 채우고 포즈를 고르면 그것이 쌓이고, 그날 자정에 한 장으로 완성됩니다. 채울 때마다 그 자리에서 폴라로이드가 한 장 나옵니다 — 열두 번째로 들어온 사람은 열두 명이 선 열두 번째 장을 받습니다. 자리를 채운 사람은 접속해 있지 않아도 광장에 반투명하게 서 있다가, 자정에 또렷해집니다.

버린 것은 «저녁의 절정»이라는 익숙한 파티의 그림입니다. 모두가 모인 순간에 초를 불고 사진을 찍는 장면은 파티라는 말에서 누구나 기대하는 것이고, 그것을 없애는 것은 아깝지 않은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얻은 것은 못 맞출 시각이 아예 없다는 것입니다. 찍는 순간이 없으니 놓칠 수도 없습니다.

남긴 시각은 제품이 고른 것이 아니다

시각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자정이 남았습니다. 다만 자정은 성격이 다릅니다. 밤 10시는 제품이 고른 시각이라 «왜 10시인가»에 답해야 했고, 사람들이 맞춰 와야 뜻이 생겼습니다. 자정은 아무도 고르지 않았습니다. 생일이라는 하루 자신의 경계입니다. 하루를 여는 자정에 초에 불이 켜지고, 닫는 자정에 사진이 완성되고 초가 꺼집니다. 두 자정은 한 사건의 양끝이 됐습니다.

앵커를 꼭 둬야 한다면 제품이 고른 시각이 아니라 사건 자신의 경계에 두는 편이 낫다는 것이 여기서 얻은 규칙입니다. 하루의 끝, 마감, 배송 완료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 시각은 약속이 아니라 사실이라서, 아무도 지키러 오지 않아도 성립합니다. 설명도 필요 없습니다.

이 결정은 끝이 아니라 방향이었습니다. 일주일 뒤 해피버스타운은 실시간 파티 자체를 거두고, 친구들이 각자의 시간에 채워 한 번 건네는 선물로 바뀌었습니다. 돌아보면 밤 10시 사진을 없앤 날 이미 정해진 일이었습니다. 비동기를 파는 제품에서 동기인 자리를 하나씩 찾아 지우다 보면, 마지막에는 «모인다»는 전제 자체가 남습니다.